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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 간단 설명과 관련한 책

by 코코누스 2022.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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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 달력을 넘기면 4.19 혁명 기념일이 눈에 뜨인다. 1960년에 일어난 일이라 꽤 오래전에 일어난 역사 속 사건 같지만 아직도 4.19 혁명을 겪었던 분들이 아직 살아 있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 중 하나다. 4.19 혁명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해 본다. 

 

 

4.19 혁명의 원인과 결과

 

4.19 혁명은 1960년 3월 15일에 실시되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이 개표조작을 한 것에 반발해 국민들이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며 격력 하게 투쟁했던 사건을 말한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되었으나 3월 15일 마산(현 창원)에서 항의 시위에 참가했던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이 실종되었다가 4월 11일에 마산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오르면서 시위가 전국적으로 퍼졌고 더욱 격렬해졌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은 시위대를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조정된 것이라고 발표하자 사람들은 더욱 분노했고 마침내 4월 19일 대통령의 관저였던 경무대로 3만여 명의 시위대가 몰려들자 경찰이 발포를 했고 이에 시위대는 무장을 갖추고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다. 주요 도시에는 계엄령이 반포되었지만 폭동은 계속되었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모든 책임을 지고 4월 26일 오후 1시 라디오 연설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하야를 밝혔고 자유당 정권은 몰락했다. 4.19 혁명의 결과로 6월 15일 제2공화국이 출범했다. 

 

 

4.19혁명
4.19 혁명 당시의 모습 [출처: 중앙대학교]

 

 

이승만의 망명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의사를 밝힌 후 4월 27일 국회에 대통령직 사임서를 제출했고, 즉시 수리되었다.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던 이기붕 부통령 당선자는 이승만의 양자인 이강석에게 가족과 함께 살해되었다. 이후 이승만은 경무대를 떠나 이화장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5월 29일 새벽 김포공항을 통해 부인 프란체스카와 함께 하와이로 비밀리에 출국했다. 애초에는 1달 정도 요양할 생각이었으나 장면 정권이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고,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향수병과 실어증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병세가 악화된 이승만은 요양원으로 옮겨졌고 90세에 운명했다. 유해는 1965년 7월 23일 미공군 수송기로 김포공항에 도착했고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른 후 국립 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4.19 혁명 기념일

 

4.19 혁명 기념일은 1973년 대통령령에 따라 제정되었다. 공휴일은 아니다. 이날에는 4.19 공원묘지에서 각종 기념행사가 진행된다. 4.19 공원묘지는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해 있으며 4.19 혁명 희생자들을 위한 국립묘지이다. 이곳에는 사월 학생혁명기념탑도 볼 수 있다. 탑문에 쓰인 글귀는 다음과 같다.

 

 


1960년 4월 19일 이 나라 젊은이들의 혈관 속에 정의를 위해서는 생명을 능히 던질 수 있는 피의 전통이 용솟음치고 있음을
역사는 증언한다. 부정과 불의에 항쟁한 수만 명 학생대열은 의기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로 세웠고
민주제단에 피를 뿌린 185위의 젊은 혼들은 거룩한 수호신이 되었다.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 되살아 피어나리라.

 

 

4.19 혁명을 주제로 한 책들

 

논픽션

-4.19혁명을 묻는 십대에게/서해문집

-민주를 지켜라/서해문집

-민주주의 역사공부/창비

 

소설/만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문열/다림

-시장과 전장/박경리/마로니에북스

-사일구/윤태호/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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