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이전으로 풍수지리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사실, 풍수지리란 땅과 공간을 해석하고 활용하는 동아시아 고유의 사상이다. 미신과는 조금 다른 의미다. 예로부터 동아시아에서는 사람의 생명이 바람과 물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바람의 방향이나 물의 흐름, 산의 모양 등을 판단해 사는 곳을 정했다. 풍수지리에 대해 알아보자.
풍수지리의 의미
'풍수'는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바람은 기후와 풍토를 의미하며, 물은 물과 관계된 모든 것을 말한다. 풍수의 기본 논리는 땅 속의 기운을 사람이 접해 복을 얻고 화를 피하자는 것이다. 즉 자연을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결해 설명하는 사상이 풍수지리다. 더 쉽게 설명하면 어떤 곳에 살아야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지, 어떤 곳이 살기 좋은 곳인지를 따지는 것이다.
풍수사상은 중국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로 전해졌고 최근까지도 집터를 잡거나, 물자리 찾기, 길 내기, 묏자리를 잡을 때 이용되었다. 풍수사상은 궁극적으로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지를 고민한다는 측면에서 지리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풍수지리를 이용한 여러 미신들이 활개를 치면서 풍수사상까지 격하된 부분이 있다.
명당의 조건
그렇다면 명당이란 어떤 곳을 말하는 걸까? 기본적으로 명당의 조건은 '배산임수'다. 즉 산을 뒤에 두고 앞으로는 물이 있고 산에서 갈라져 나온 작은 산자락이 좌청룡 우백호 형식으로 감싸는 터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경복궁은 명당이다. 조선왕조가 500년간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경복궁이 명당이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왕자의 난이나 단종 폐위 등 비극의 역사도 많다. 그래서 혹자는 한 번 명당이었다고 영원한 명당은 아니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시대에 따라 지운이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이다.
지종학 풍수지리학자는 서울에서 최고의 명당은 땅의 기운이 모이는 용산이고, 지금까지 용산을 지배했던 세력이 한반도를 좌지우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용산은 고려말에는 몽고군이,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구한말에는 청나라군이 주둔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이, 해방 이후로는 미군이 주둔 중이기도 하다.
청와대 풍수지리
경복궁 뒤쪽에 자리잡은 청와대는 북악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조선시대 경복궁의 후원이었고 일제강점기 때는 조선총독이 사용했고 미군 중장의 관저로 이용되기도 했다. 청와대라는 명칭은 1961년 윤보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그동안 불리던 '경무대'라는 이름이 부정부패의 이미지가 있다며 청와대로 바꾸었다.
청와대 터에 대한 문제를 처음 언급한 것은 서울대 지리학과의 최창조 교수였다. 그는 청와대가 죽은 영혼들의 영주처이거나 신의 거처라며 청와대가 흉지라고 주장했다. 또한 여러 명의 풍수학자들은 청와대가 북악산의 정기를 받고는 있지만 북악산에는 바위가 많아 살기가 있으므로 청와대 터가 좋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동안 청와대의 주인이었던 대통령들이 저격을 당하거나 불명예스럽게 생을 마무리하게 되면서 청와대의 터가 운을 다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계속되었다.
그 이유는 때문은 아니겠지만 역대 대통령들도 국민과의 소통 등을 이유로 청와대 이전 문제를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보안이나 경비 등의 문제로 번번이 실현시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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