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주말 오후 아이와 끝말잇기를 했다. 비바람이 거세 산책을 나가지도 못하고 집안에서 이것저것 해보지만 아이보다 내가 먼저 싫증 난다. 장난감 놀이도 지치고, 역할놀이도 지겨울 즈음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 끝말잇기를 하자고 해본다. 웬일인지 좋다고 한다.
끝말잇기는 아이의 두뇌발달을 돕는 매우 좋은 놀이다. 준비물은 하나도 필요없고 입만 있으면 된다. 침대에 누워서, 소파에서 뒹굴거리며 아이와 끝말잇기 하는 시간이 즐겁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 형제, 자매들과 빈둥거리다가 끝말잇기를 하곤 했다. 이와 비슷한 놀이로는 "이 방에 있습니다 무엇일까요?"라는 놀이가 있다. 문제를 내는 사람이 이렇게 시작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10가지 정도 질문을 하는 거다. "살아 있나요?" "크기가 큰가요?" "색깔은 뭔가요?" 등등. 이러면서 문제를 낸 사람이 말하는 물건을 맞춰가는, 초보 추리 퀴즈라고나 할까. 형제, 자매가 없는 아이는 오롯이 나랑만 함께 놀아야 해서 그런 추억을 갖지 못하는 게 좀 아쉽긴 하다.
"책장"
"장갑"
"갑옷"
"옷방"
"방심"
"심부름!"
내가 심부름을 외치자, 갑자기 아이가 말이 없어지더니 "름"으로 시작하는 단어 없다며 투덜거린다. 정말 그럴까? 끝말잇기에서 "해 질 녘, 심부름" 같은 단어가 나오면 백전백패라고 생각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전을 찾아본다.
놀랍게도 '름'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있다. 물론 북한어다. 북한에서는 두음법칙을 적용받지 않는 단어가 많다 보니 '름'으로 시작하는 단어도 많았다. 몇 가지를 살펴본다.
름렬하다 : 생김새와 태도가 의젓하고 당당하는 뜻의 북한어
름장 : 관아에서 돈이나 곡식을 출납하거나 보관하는 일을 뜻하는 북한어
름전 : 신라시대에 벼슬아치의 녹봉을 맡아보던 관아를 뜻하는 북한어
름육 : 관가의 창고에 넣어둔 고기를 뜻하는 북한어
북한어가 전부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없는 단어는 아니다. 반면 '녘'으로 시작하는 단어는 국립국어원에 등록된 단어는 없다. 신조어로 '녘새발', '녘 노을', '녘발산' 등이 오픈사전에 있지만 표준어가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면 표준어로 등록되는 경우가 많으니, 끝말잇기를 위해서라도 새로운 단어들이 많이 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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